많은 사람들이 커피라는 음료가 어떻게 탄생하게 되었는지를 밝혀내려 하지만 아직 그 명확한 답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일단 커피의 시작이라는 에티오피아의 그 당시 상황과 정세를 이해하여 커피가 어떻게 시작되었을지를 유추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커피의 시작 - 에티오피아의 서남부에서부터
에티오피아 서남부 부족들이 커피를 이용하기 시작한 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매우 오래 전부터 커피를 사용하고 있었다고 여겨집니다.
문화와 문자가 없었던 이 부족들은 자신들의 삶을 기록으로 남기지 않았기 때문에 직접적인 기록이 없습니다.
에티오피아 서남부에 대해 알 수 있는 가장 오래된 기록은 기독교도와 이슬람교도들이 남긴 것입니다.
그들이 에티오피아 서남부에 진출하여 현지 부족과 처음 만난 것은 9세기경으로 추정됩니다.
커피의 시작 - 기독교도와 에티오피아
에티오피아의 기독교도들 사이에는 '에티오피아판 고사기'라고 할 수 있는 <케브라 나가스트>가 전해집니다.
이 역사서는 기원전 10세기 솔로몬 왕과 시바 여왕의 아이가 태어나 에티오피아에 건너와 나라를 세웠다는 전설로부터 시작합니다.
이 전설은 정말로 3,00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었는지 불명확하지만, 적어도 1세기경에는 악숨 왕국이 존재했습니다.
이 나라가 기독교화된 것은 4세기경으로 알려져 있으며, 홍해의 요충지였던 악숨 왕국은 교역에서 크게 발전했습니다.
그러나 7세기에 이슬람교가 부흥하면서 악숨 왕국은 이슬람교도와 우호적인 관계를 맺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9세기경에 이슬람 상인 세력이 강력해지면서 악숨 왕국은 서남부로 남하하게 되었습니다.
서남부에 살던 선주부족을 침략하고 원주민들을 노예로 끌고 간 것으로 전해지며, 이 때 에나리아 지역에서 대량의 황금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에나리아는 20세기 초반에 에티오피아를 대표하는 커피 산지였으며, 이것이 서남부 커피 자생지에 관한 가장 오래된 기록 중 하나입니다.
커피의 시작 - 이슬람교도와 에티오피아
634~644년경, 이슬람교 예언자 무함마드의 씨족인 쿠라이시족 족장의 아들 중 하나가 부하들과 함께 메카에서 홍해 연안 제이라로 건너가며 에티오피아로 향한 최초의 기록이 있습니다.
이슬람 교도들의 주요 목적은 '상업'이었습니다. 그들은 현지 족장의 허락을 받아 에티오피아에 체류하면서 내륙부로 진출하였고, 9세기에는 기독교도들과 함께 에티오피아 서남부에 안착하게 되었습니다.
안착한 이슬람 상인들은 그 수를 늘려가며 권력을 쥐기 시작했고, 896년에는 에티오피아 내륙 최초의 이슬람 국가인 '쇼아 술탄국'을 세웠습니다.
이렇게 9세기경에 기독교와 이슬람 상인들의 손에 의해 에티오피아 서남부 루트가 개척되었습니다.
그러나 당시 기록에는 커피와 관련된 내용은 없었습니다. 에티오피아의 주요 수출 품은 '노예'였으며, 그 대부분이 아라비아 반도로 수출되었습니다.
예멘의 지야드 왕조는 수도 자비드에 성 요새를 건설하기 위해 많은 에티오피아계 노예를 사오게 되었고, 그 수가 점점 늘어나 11세기에는 에티오피아계 주민이 아랍인을 웃돌았을 정도입니다.
지야드 왕조가 내분으로 멸망한 후, 에티오피아계 주민이 세계 최초의 아프리카계 이슬람 왕조인 나자(Najahid)를 세웠다는 기록도 남아있습니다.
커피의 기록 - 의학집성, 의학전범
9세기 후반에서 10세기 초경, 이슬람교 예언자 무함마드의 시대 이후 페르시아 의학서에 커피라고 추정되는 생약이 기록되기 시작했습니다.
테헤란 근교 레이에 사는 학자 알 라지는 925년에 사망한 뒤, 그의 책이 제자들에 의해 '의학집성'이란 책으로 편집되었습니다.
이 책에는 '분 혹은 분카'라는 식물 열매와 그 종자를 끓여서 만든 '약'에 대한 기록이 있었습니다.
'분'이라는 단어는 15세기 이후 아라비아어로 커피 열매와 커피콩을 의미했기 때문에 이 책은 커피에 대한 중요한 문헌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알 라지 이후 약 100년 뒤, 페르시아의 위대한 학자 이븐 시나는 1020년에 '의학전범'이라는 책을 썼습니다. 이 책은 라틴어로 번역되어 서양의학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이 책에서도 '약' 해설에 '분큼 혹은 분코'라는 식물 생약이 소개되었습니다.
이 또한 '분'과 관련된 말로 커피콩을 가리킨다고 여겨집니다.
이렇게 10~11세기에 저술된 두 기록은 커피에 관한 최초의 역사 자료로 여겨지며,
아라비아 반도에서 커피가 전해졌을 가능성을 시사하는 근거가 됩니다.
최근에는 1996년 두방 북동부에 위치한 쿠시 유적에서 중국과 예멘에서 만들어진 도자기 파편과 함께 탄화한 커피콩 두 알이 출토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발견들은 당시 커피 이용이 확산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실마리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커피콩들이 우연히 불 속에 들어간 것인지,
인위적으로 배치된 것인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으며, 추가적인 분석이 필요합니다.
이러한 연구들은 아라비아 반도를 사이에 두고 홍해 반대편에 있는 페르시아 만 인근 유적에서 발굴된 커피콩들이 당시 커피 이용이 확산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습니다.
커피의 잠적 - 역사적 공백기
커피 관련 기술은 10~11세기에 모습을 드러내고 이후 약 400년 동안 문헌에서 사라졌습니다.
커피가 다시 등장한 것은 15세기에 예멘에서입니다.
이러한 긴 공백기에는 어떤 사건들이 있었을까요?
궁금증의 실마리를 찾기 위해 우리는 조금 시점을 달리하여 커피와 직접적인 관련은 없지만
예멘의 역사 흐름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1021년, 예멘에서는 자비드를 수도로 하는 나자 왕조가 들어섰습니다.
이 왕조는 인구가 많았지만 신분이 낮은 노예 출신들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이슬람에 관한 교양을 갖지 못한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이로 인해 나자 왕조에 따르지 않는 다른 작은 왕조들이 생겨났고, 그들 간의 다툼이 계속되었습니다.
이러한 혼란은 1174년 이집트 아이유브 왕조가 예멘을 침공하면서 계속되었습니다.
그리고 아이유브 왕조와의 전쟁에서 틈을 타 아바스 왕조에서 파견된 전령관 라수르가 예멘 독립을 기획했습니다.
라수르는 타부족 간 반란에 편승하여 만수르 우말이 세운 왕조를 세웠습니다.
라수르 왕조 하의 예멘은 아덴을 교역항으로, 자비드를 학술 및 종교 도시로 발전하여 안정과 번영의 시대를 맞이했습니다.
한편 나자 왕조 멸망 후에도 자비드에는 많은 에티오피아계 주민이 살면서
'아비드'라 불리는 일대 세력을 형성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라수르 왕조 시대로 접어들면서 많은 모스크와 학교가 자비드에 건설되었고, 학자들이 모여들기 시작했습니다.
라수르 왕족들은 이슬람 정통파 신학자와 법학자들을 아군으로 삼아 자신들의 지배체제가 (이슬람 교리에 비추어) 정당하다는 주장을 뒷받침하고자 했습니다.
이로 인해 라수르 왕조 시대에는 학식 있는 사람들이 대접받고, 아비드들은 사회적으로 낮은 지위로 밀려났습니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들이 '커피 공백기'와 관련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커피 '분 또는 분카'는 신분이 낮은 아비드들이 미개발 지역인 산악에서 가져온 것으로, 이로 인해 자비드 학자들로부터 저속한 것으로 폄하된 것일지도 모릅니다.
라수르 왕조 시대에 커피에 관한 내용이 농학서에 기록되지 않았다는 사실도 이를 뒷받침합니다.
따라서 이러한 사건들이 커피의 관련 기술이 사라진 공백기와 연관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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